 처음 들어간 식당에서는 마음 놓고 주문하기가 망설여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한식당에서는 김치, 일식당에서는 계란말이를 맛보고 음식 실력을 가늠해 본다. 그렇다면 와인을 자주 곁들이게 되는 이탈리아나 프렌치 레스토랑의 실력은 어떤 음식으로 추측해 볼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많은 사람이 한결같이 꼽는 것 중 하나가 빵이다.
좋은 식사용 빵은 겉은 바삭하고 속살은 부드럽고 탄력이 있다. 시간이 조금 지났다고 고무처럼 질긴 빵이라면 미리 구워서 냉동실에 보관하고 있다가 손님에게 내오기 직전에 잠깐 오븐에 들어갔다 나왔을 확률이 높다.
주식이었던 과거보다는 덜하지만 빵은 여전히 서양식 식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인은 굴 요리를 먹을 때는 호밀빵을, 화이트와인 소스가 들어간 생선 요리를 먹을 때는 천연 효모로 만든 빵을 많이 찾는다. 와인만큼은 아니지만 빵도 음식의 맛과 향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를 한다.
우리나라는 빵과 과자의 구분이 모호하지만 유럽, 특히 프랑스는 이 구분이 명확하다. 곡물 가루, 이스트, 물, 소금만을 가지고 만든 빵은 ‘불랑주리’라 하고, 이스트를 사용하지 않고 밀가루, 설탕, 버터, 우유 등으로 만든 과자류는 ‘파티스리’라 한다. 우리가 빵이라고 생각하는 크루아상, 브리오슈는 파티스리, 그중에서도 ‘비에누아즈리’에 속한다. 비에누아즈리에 속한 것들은 외형은 빵 같지만 다량의 설탕과 버터 등을 넣어 만들기 때문에 식사 중이나 와인 마실 때 곁들이면 음식(와인) 본연의 맛을 흐릴 뿐이다. 간혹 이런 종류의 빵을 내놓는 식당에 가면 당황하게 된다. 음식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곳이 아닌지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빵은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 허기진 배를 달래라고 주는 음식이 결코 아니다. 와인이 나오는 자리마다 어김없이 빵이 등장하는 까닭은 빵이 와인의 섬세한 맛과 향을 즐기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코스별로 음식이 나올 때나 마셔야 할 와인의 종류가 여럿일 때 빵의 존재는 더욱 빛을 발한다. 적은 양의 빵이라도 입 속에 남아 있는 이전 와인(혹은 음식)의 흔적을 지워주기에 충분하다. 덕분에 다음 와인의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식당이든 와인바든 불랑주리의 대표 격인 바게트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맛이 가장 담백해 맛에 대한 자극을 가장 적게 주기 때문이다. 격식이 없는 자리라면 빵은 접시에 남아 있는 소스를 마지막까지 즐길 수 있게 도와주고 포크로 잘 잡히지 않는 야채를 집을 때도 유용하다. 그러니 빵이야말로 디저트가 나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곁에 두고 먹어야 하는 음식이다. 빵의 크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개 두개 정도면 한 끼 식사를 마치는 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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